40여 곳의 기업에 지원했다. 두 번의 이직을 거치며 부족한 부분을 채웠고, 운으로 다가온 기회들을 알아보고 감사할 수 있었다. 다만 비즈니스에 영향을 주는 개발자가 되겠다는 욕심에 기본을 놓치는 아쉬운 판단도 했다. 반쯤은 성공적인 2025년이었다.
- 커리어
2024년 6월에 진행된 이직은 설렘보다는 걱정이 앞섰다. 잘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성과를 내야 한다는 부담에 주춤거렸지만, 주변의 격려와 무엇보다 대표님께 배우고 싶다는 욕심으로 내디딜 수 있었다. 돌이켜 보면 그 1년은 많은 걸 배운 시기였다. 끊임없이 ‘왜’를 물어야 했고, 괜찮을 거라는 방심이 곧 장애로 이어질 수 있음을 알게 됐다. 경쟁사의 유저 환경과 마케팅은 납득이 가지 않았지만, 내 생각을 비웃듯 그들이 하는 대로 따라 했더니 성과가 났다. 비즈니스의 성공 요인을 나의 견해가 아닌 철저히 시장의 시각에서 바라보며, 자아를 덜어내고 객관화하는 귀한 경험을 했다.
2025년 4월, 회사를 지탱하던 외주 계약이 만료되어 이른 폐업을 맞이했다. 이미 이직을 할 때부터, 해당 외주가 끊기게 되면 폐업을 할 수 있다는 고지를 듣고 합류했기에, 큰 충격은 없었다. 나의 목표는 짧은 시간이라도 배울 수 있는 사람과 함께 일하는 것이었고, 그 목표는 이루었기 때문이다. 다만 아쉬움은 남았다. 런칭 직후 시장의 반응이 준수했기에, ‘나의 역량이 더 기민했다면 결과가 달랐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더 오래 함께하지 못한다는 게 아쉬웠다.
5월 중순까지 남은 업무를 책임감 있게 마무리하고, 6월 방통대 기말고사까지 치른 뒤 본격적인 이직 시장에 뛰어들었다.
이번 이직의 목표는 명확했다. 더 큰 트래픽과 규모를 감당하기 위해 JVM 생태계로 진입하는 것. FastAPI, tRPC에 익숙해진 경력을 뒤로하고 새로운 스택에 도전하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40여 곳의 기업에 지원, 이력서 열람 알람 뒤 1초 만에 날아오는 탈락 통보, 지인 회사에서조차 ‘자바 경험 부재’로 인해 팀장 라인에서 무산된 면접. 새로운 포지션에 도전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새삼 다시 느꼈다.
그럼에도 10여 곳 이상의 스타트업에서 면접 제안을 받았다. 시리즈 C 이하의 규모였고, 그간 쌓아온 기술적 시도와 고민들을 좋게 봐준 덕분이었다. 이 과정에서 2년 넘게 쉼 없이 지속해 온 스터디와 전 직장 대표님과 매일 운동하며 나누었던 시스템 설계 토의가 큰 힘이 되었다. 단순히 정답을 맞히는 것을 넘어, 경험이 부족한 부분에도 논리적으로 접근해 해결책을 찾아내는 과정 자체가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정착하기까지 작은 시행착오도 있었다. 합류했던 한 조직에서 지식과 컨텍스트의 공유를 금기시하는 등 낯선 문화를 접했다. 협업을 위해 5분짜리 배경 설명을 미리 공유했을 뿐인데, 그게 월권처럼 받아들여지는 분위기였다. 지금까지 히스토리와 컨텍스트를 나누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는 환경에서 일해왔기에, 꽤 당황스러웠다. 공유를 통한 효율화가 오히려 부정적으로 받아들여지는 환경을 경험하며, 조직 문화가 역량 발휘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깨달았다.
이맘때쯤 함께 일했던 여러 동료들의 추천과 함께 현 회사에 최종 합류하게 되었다. 현재 작은 개발팀을 이끌며 서비스 기획 구체화와 R&D 계획 등 비즈니스 전반에 참여하고 있다.
나는 여전히 ‘맥락 공유’는 협업의 기본이라고 생각한다. 이에 합류 후 바로 진행한 일은 눈에 보이게 공유하는 것이었다. 현재 진행 중인 업무와 향후 계획, 일을 진행하며 마주하는 블로킹 요소들을 공유하기 시작했다. 이를 바탕으로 팀이 어떻게 더 효율적으로 나아갈 수 있을지 고민하며, 명확하게 제품을 만들어가는, ‘일이 진행되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비록 내 판단이 틀릴 수도 있겠지만, 자문을 구할 수 있는 시니어가 존재하기에, 하나씩 시도하고 때로는 부서지는 경험을 하며 더 배워보려 한다.
- 학업
2025년 초, 우연히 접한 ‘대학원’이라는 키워드가 마음속 깊이 들어왔다. 20살 짧은 입시 기간을 거쳐 작곡을 전공했다. 절대적인 시간이 부족하여 깊은 공부를 하지 못했기에 늘 나를 괴롭혔던 부분이 ‘기초’였다. 비전공자로서 짧은 기간 동안, 실무적인 기술만 익힌 채 시장에 뛰어들었던 나에게, 근본적인 원리에 대한 무지와 불안함이 늘 따라다녔다. 공학 지식이 전무했던 나로서는 대학원 진학을 장기적인 도전 과제로 설정하고, 곧바로 방통대 컴퓨터과학과에 편입했다.
1학기 기말고사 기간, 아이러니하게도 회사의 폐업은 나에게 2주간 몰입할 수 있는 시간을 선물했다. 평소에 궁금했던 운영체제 수업을 들으면서 개발의 기본을 맛보는 것 같아 즐거웠으나, 동시에 오랫동안 놓았던 ‘수학’의 벽을 실감했다. 결과적으로 3.9점의 학점을 받으며, 4점의 고지를 넘지 못했다는 사실이 못내 아쉬웠다.
새로운 조직에 적응하며 맞이한 2학기는 예상치 못한 변수들의 연속이었다. 잦은 저녁 미팅과 밀도 높은 업무 속에서 공부 시간은 계획대로 확보되지 않았다. 대학원 추천서를 위한 최소 조건인 ‘전체 평점 3.5점, 담당 교수님의 과목은 4.0점’이라는 기준을 넘기 위해, 시험을 앞둔 2주는 스스로 꽤 예민한 상태였음을 인지했다.
하지만, 학업보다는 회사 업무가 1순위여야 하기에, 회사 내에서는 학업을 떠올리지 않고 과업에 집중했다. 부족한 시간은 진행하고 있던 스터디, 사이드 프로젝트를 모두 일시 정지하며 확보했다. 이런 노력 끝에 운이 좋게도 2학기는 4.3점으로 마무리할 수 있었다.
과제와 시험 기간이 돌아올 때마다, 학업으로 인해 개인적인 공부를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 자주 만들어지자 자퇴를 고민했다. 이론 공부보다 실무적인 예제를 만드는 것이 더 효율적이지 않을까, 저녁의 여유를 포기할 가치가 있는가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했다. 하지만 1년을 무사히 마무리하며 얻은 뿌듯함은 그 모든 스트레스를 잠시나마 가려주었다.
직장을 병행하며 얻은 성적표라고 위안을 삼을 수 있겠지만, ‘조금만 더’라는 미련이 계속해서 남는다. 방통대라는 환경 특성상 더 높은 점수를 유지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다. 또 공학을 전공하고 꾸준히 공부해 온 사람들의 성장 속도를 보면, 늦게 시작한 만큼 더 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낀다. 그럼에도 다행히, 공부에 대한 스트레스는 크지 않다. 스스로 한계점까지 몰아치지 않는 성격으로 인해 오래 꾸준히 갈 수 있을 것 같다.
2학기를 보내며 계획대로 시간을 확보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체감했다. 다가올 4학년 과정은 방학부터 미리 수업을 준비하며 변수에 대응하려 한다.
- 신체
20대 중반, 고깃집 건너편에 앉았던 한 30대 중반 직장인의 모습을 아직도 기억한다. 셔츠 소매로 드러나는 전완근과 여유로운 분위기를 보며, 나도 저렇게 나이를 먹고 싶다고 생각했다. 20대 후반에 들어서야, 나는 저 목표를 이루기 위해, 더불어 떨어지는 체력을 보며 생존을 위해 운동을 시작했다. 물론, 스트레스 조절이나 잡생각들을 잊기 위한 목적도 적지 않다.
누군가 나에게 건강에 대해 묻는다면, 이처럼 건강한 적이 없었다고 답변하곤 한다. 꾸준히 운동을 시작한 지 벌써 2년이 넘어간다. 2년을 운동한 것 치고는 여전히 일반인에 가까운 체형을 유지하고 있지만, 마른 몸에서 약 10kg를 증량했으니 오랫동안 나를 따라다닌 ‘마른 몸’이라는 꼬리표는 떼어냈다. 더불어 잦았던 위염과 장염도 거의 사라졌다. 좋은 건지 모르겠지만, 증량 때문인지 주량도 살짝 늘었다.
짧은 시간 동안 이루어진 급격한 증량으로 인해 체지방 관리의 필요성을 느껴 러닝을 병행하고 있다. 날씨가 추워져 주춤할 때도 있지만, 주 2회 5km씩 꾸준히 달리려 노력한다. 최근에는 친구와 함께 10km를 1시간 페이스로 완주하는 경험도 했다. 단 한 번도 걷지 않고 목표를 달성했을 때의 뿌듯함, 그리고 한강 변을 달리며 마주한 풍경이 좋았다. 그냥, 너무 자유롭고 상쾌했다.
러닝 중, 목표 지점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가 있다. 이미 숨이 턱끝까지 차오르고 다리 근육이 비명을 지르고 있는 상황임에도, 늘 전력질주를 시도한다. 그 짧은 시간 동안, 수없이 걷고 싶은 유혹이 다가온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으면 나중에 뭐든 이뤄낼 수 있지 않을까, 근성이 조금은 자랄 수 있지 않을까. 작은 기대를 하면서 완주한다. 그럼 꽤나 개운하다.
중량 운동에서의 방식은 조금 바뀌었다. 이직과 함께 운동 파트너가 사라지고 무리하게 무게를 올리다가 마주한 부상들로 인해, 지금은 저중량 고반복 방법을 선택하여 안전하게 운동하고 있다. 총 운동 시간이 줄어든 만큼 운동 효율을 높이기 위해 식단을 조절하고 단백질 보충제를 섭취하는 등 여러 시도를 이어가고 있다. 아직까지는 큰 변화가 느껴지진 않지만, 유당불내증으로 인한 배탈이나 피부 트러블 없이 내 몸에 맞는 방식을 찾아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값진 성과라고 생각한다.
- 관점
2025년의 끝 무렵에 다다르면서, 다양한 관점을 어떻게 포용할 수 있을까에 대해 많이 고민하게 되었다. 나이가 들고 각자의 경험이 두터워질수록 본인의 시야는 더욱 견고하게 정립된다는 사실을 체감한다. 시간이 흐르며 오래된 인연들을 만나다 보면, 대화 속에 ‘내 시야가 옳다’ 거나 ‘내가 본 세상만이 정답’이라는 확신이 조금씩 배어 있음을 느끼게 된다. 이야기가 길어질수록, 단호해지는 어투 속에 누군가는 말을 아끼거나 다툼이 발생하는 것을 보곤 한다.
사실 이런 말을 꺼내는 이유는 내가 타인의 세상을 잘 포용하는 사람이라서가 아니다. 오히려 그들로부터 투영된 모습에서 나의 고집을 발견하고, 거울을 보듯 부끄러움을 느꼈다. 당신의 세상과 나의 세상이 각자 존재한다는 그 지극히 당연한 관점을 견지하는 것이 중요한데, 그 당연한걸 나는 참 못하고 있다.
그 관점을 유지하는 것은 여전히 어렵고 끝내지 못할 난제인 것 같다. 어느 순간 내가 속한 조직과 환경에 깊이 몰입하다 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 시야가 좁아지는 걸 수차례 경험했다. 그렇기에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걸 지극히 두려워하고 낯설어하는 성격이지만, 이제는 타 분야의 목소리와 다양한 시각을 접하는 기회를 외면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한다. 여전히 내게는 어려운 다짐일지라도, 익숙한 공간 밖의 사람들을 꾸준히 마주해야 생각들이 굳지 않고 유연하게 흐를 거라 생각한다.
- 정리하며
돌아보면, 2025년은 낯섦의 연속이었다. 다른 시각으로 보면,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는 시간이기도 했다. 첫 시작인 JVM 생태계로 돌아갔고, 둘이서 하던 운동을 다시 홀로 하기 시작했다. 익숙해지기 전에 이직을 하고, 또 이직을 했다.
그 과정은 꽤 재밌었다. 1초 만에 날아오는 탈락 알림에 웃음이 났고, 3차까지 이어지는 기술 면접을 통과했을 땐 뿌듯했다. 낯선 조직 문화에 당황하기도 했다. 이러다 백수로 남으면 어떻게 해야 하나 마음이 불안하기도 했고, 그래도 열심히 해왔던 나를 믿기도 했다. 그 경험들이 다음 선택의 기준이 되었다.
나이가 들수록, 한 해가 하나의 완성품이 아니라 완성을 향해 쌓아 가는 과정이라고 느낀다. 이제 1년은 무언가를 이뤄내기엔 짧은 시간이다. 그래서 2026년도 거쳐가는 해가 될 것 같다. 학업의 마지막 해, 새 조직에서의 첫 해. 무엇 하나 포기할 수 없고 꾸준히 이어가야 하는 시간이다. 이 시간들을 소중히 쌓아야 후회 없이 내가 그리는 미래에 조금이라도 닿을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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